'무라까미 하루키'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9.11 ichi-kew-hachi-yon #2
  2. 2009.08.27 ichi-kew-hachi-yon
  3. 2008.10.25 The Wind-Up Bird Chronicle - 태엽 감는 새
  4. 2008.10.16 거울

ichi-kew-hachi-yon #2

일상 2009. 9. 11. 14:21

지하철 간이역에서 읽었고,집으로 오는 그 짧은 길목에서도, 그리고 아내와 아들들이 잠들어 있는 후에도 폈으니 재미와 긴박감은 대단하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벌써 해설서가 4권이나 나왔다니, 화제작은 화제작이다.물론 많은 화제작이 수작 이상의 작품으로 기억되는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그의 작품을 10여년 넘게 읽어온 독자라면 여러 가지의 나름의 해석을 어렵지 않게 내놓을 수 있다.등장 인물 부터 구성 그리고 이면의 의미까지.

그런 구구절절한 것 보다,개인적으로 아쉬웟던 인물이 있었다.

바로 우시카와 였다.

이름부터 그의 외모와 무례를 떠나 어떤 불쾌한 적의를 품고 있는듯한 의복까지 똑같다.흡사하다가 아닌 정확히 일치한다.

문제는 그의 표현력이다.몇년이 지나 말을 갈아탄 그가, 그 사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겟지만, 그렇게 지적인 말투는 곤란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의 이미지는 불알 큰 우시 였다.

변변한 재주도 없고,똥자루 만한 키,벗겨진 이마,그 옆에 과거엔 여기에 머리카락이 있었다는 걸 알려줄 만큼의 지저분한 터럭,뭔가 정도에 벗어난 얼굴의 비대칭, 평생 한 번도 치과에 가지 않았을 듯한 이빨들, 그리고 늘 웃는 얼굴 속에 표정없는 눈빛,몇 달은 세탁을 안 했을 바지, 얼룩 잔뜩 묻은 셔츠에,싸구려 원색의 타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진한 도련님인 척하는 엉뚱한 녀석을, 한눈에 '이놈은 나 같은 부류구나' 라는걸 알아채는 그 본능적인 감을 가진 우시다.단 한가지 그가 가지고 있는 재주이며 현명함이다.바로 그 점이,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수 많은 이들이 숱하게 쓰러지고 사라져간 그 칙칙하고 음험한 세계에서, 끝까지 살아남게 한다.

그런 그가 다소 장황하지만 암시적이고 자연스레 비유적 표현을 쓴다는 게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Book2 를 덮고 난 후의 감상은, 이대로 끝나고 좋고, Book 3 이 나와도 좋다.

이게 끝이라면, 다소 불 친절하지만,그 상상력만으로도 훌륭한 점수를 주고 싶다.초반 부터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팽팽하게 당길 수 있는 작가는 흔치 않다.그 사이 정작 본령의 의미가 흐려지는 면은 분명히 존재하다. 만약, Book 3 가 나오고 이런 구도를 끝까지 이어간다면 하루끼의 소설가적 역량의 정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 누이가 이제 20대 초반인 조카녀석이 무슨 책을 보고 있나 궁금해서 아들이 보고 있는 하루끼의 책을 한권을 보았단다, 그리고 "그다지 아이에게 좋은 책은 아닌 것 같다, 내 취향이 아니더라" 고 말했다.

이해한다. 아마 최근 작품이라면 충분히 그러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면에서 난, 그 여름 날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엇을 때 만났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어떤면에서 행운이었다. 초기작 부터 시간순대로 차근차근 읽어왔으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

제 아무리 대 작가여도 내가 가는 길과 맞닿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덕분에 다시 한 번 더 읽고 싶은 책이 생겼다.

ps
다시 읽어보니, 4권 정도의 분량으로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것 같다.1년이라는 시간도 맞아떨어지고 뭔가 어울린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대로는 열린 결말이라는 것 보단, 불완전하다라는 감상이 더 짙다.
물론 이건 온전히 작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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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amy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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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hi-kew-hachi-yon

일상 2009. 8. 27. 05:20

비닐 포장된 책은 늘 좀 더 정성들인 느낌이다.단, 검지손가락으로 콕 찔러서 한번에 벗겨지는 경우에만.

'툭'

큼지막한 오렌지 색 레이블 1Q84 밑으로 Murakami Haruki 란 글씨가 보인다.

'야나첵??' 이 사람 이름은 들어본것도 같고, 여하튼 딸려 나온 시디라 mp3 로 리핑한다.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좋아서 인지,새벽의 고요함 탓인지,1장과 2장을 읽어보면서 간만에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아내는 옆에서 편안한 듯이 누워있다,'나 이거 시작이 마음에 들어' 라고 말을 건넸다.

여전히 감은 눈으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전에 처럼 책을 읽어 주고 싶다는 기분이 든건 오랜만이다.


해변의 카프카 이후로 그의 작품을 찾아서 보지 않게 되었다.외부의 평가는 상당히 좋았던 것 같은데(이 책의 표지 뒷면에 씌여져 있다.2005년 뉴욕 타임즈에 '올해의 책' 으로 선정되었다 한다) 내겐 그다지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굳이 비교 하자면 그런 류 라면 초기 작품 중 '일각수의 꿈' 이 더 나았다, 라고 말하고 싶다.왜 그 작품을 보면서 일각수의 꿈을 떠올렸는지는 모르겠다.


리핑된 음악을 들으면서, '너무 친철하지 않나'

그 라면 문장으로 충분하다,흥미를 느낀 독자 라면 아마도 찾아서 듣겠지,그리고 다시금 문장 하나 단어 하나의 깊은 맛을 보려 하지 않을까.

너무 독자의 구미와 편의를 맞춘건 아닌가 싶다,확실히 편하긴 하다.

일단,2장까지는 아주 맛있는 애피타이저 같다.

겉모습에 속지 않도록 하세요.현실이라는 건 언제나 단 하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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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s of Distant Towns
*
Eternal H a I f - M o o n
*
Ladder in Place

The telephone rang at almost the exact moment I was falling asleep.
I tried to ignore it, but as if it could read my mind, it kept up its stubborn ringing: ten times,twenty times it was never going to stop.

Finally, I opened one eye and looked at the clock.Just after six in the morning. Beyond the window shone the full light of day.
The call might be from Kumiko. I got out of bed, went to the living room, and picked up the receiver.

“Hello,” I said, but the caller said nothing. Somebody was obviously there, but the person did not try to speak. I, too, kept silent. Concentrating on the earpiece, I could just make out the sound of breathing.

“Who is it?” I asked, but the silence continued at the other end.

“If this is the person who’s always calling, do me a favor and make it a little later,” I said. “No sex talk before breakfast, please.”

“The person who’s always calling?” blurted out the voice of May Kasahara. “Who do you talk about sex with?”

“Nobody,” I said.

“The woman you were holding in your arms last night? Do you talk about sex with
her on the telephone?”

“No, she’s not the one.”

“Tell me, Mr. Wind-Up Bird, just how many women do you have hanging around

you-aside from your wife?

“That would be a very long story,” I said. “Anyhow, it’s six in the morning and I haven’t had much sleep. So you came to my house last night, huh?”

“And I saw you with her-holding each other.”

“That didn’t mean a thing,” I said. “How can I put it? It was a kind of little ceremony.”

“You don’t have to make excuses to me,” said May Kasahara. “I’m not your wife. It’s none of my business, but let me just say this: You’ve got a problem.

“You may be right,” I said.

“You’re having a tough time now, I know that. But I can’t help thinking it’s something you brought on yourself. You’ve got some really basic problem, and it attracts trouble like a magnet. Any woman with any sense would get the hell away from you.”


“You may be right,” I said again.

May Kasahara maintained a brief silence on her end of the line. Then she cleared her throat once and said, “You came to the alley last night, didn’t you? Standing for a long time at the back of my house, like some amateur burglar ... Don’t worry, I saw you there.”

“So why didn’t you come out?”

“A girl doesn’t always want to go out, you know, Mr. Wind-Up Bird. Sometimes she feels like being nasty-like, if the guy’s gonna wait, let him really wait.”

I grunted.

“But I still felt bad,” she went on. “So I dragged myself all the way to your house later- like an idiot.”

“And I was holding the woman.”

“Yeah, but isn’t she kinda cuckoo? Nobody dresses like that anymore. And that makeup of hers! She’s, like, in a time warp or something. She should go get her head examined.”

“Don’t worry,” I said, “she’s not cuckoo. Different people have different tastes.”

“Well, sure. People can have any taste they want. But ordinary people don’t go that far just for taste. She’s like-what?-right out of an old magazine: everything about her,from head to foot.”

To that I did not reply.

Tell me, Mr. Wind-Up Bird, did you sleep with her?”

I hesitated a moment and said, “No, I didn’t.”

“Really?”

“Really. I don’t have that kind of physical relationship with her.”

“So why were you holding her?

“Women feel that way sometimes: they want to be held.”

“Maybe so,” said May Kasahara, “but an idea like that can be a little dangerous.”

“It’s true,” I said.

“What’s her name?”

“Creta Kano.”

May Kasahara fell silent at her end. “You’re kidding, right?” she said at last.

“Not at all. And her sister’s name is Malta Kano.”

“Malta?! That can’t be her real name.”

“No, it isn’t. It’s her professional name.”

What are they, a comedy team? Or do they have some connection with the Mediterranean Sea?”

“Actually, there is some connection with the Mediterranean.”

“Does the sister dress like a normal person?”

“Pretty much,” I said. “Her clothing is a lot more normal than Creta’s, at least. Except she always wears this red vinyl hat.”

“Something tells me she’s not exactly normal, either. Why do you always have to go out of your way to hang around with such off-the-wall people?

“Now, that really would be a long story. If everything settles down sometime, I may be able to tell you. But not now. My head is too messed up. And things are even more messed up.”

“Yeah, sure,” she said, with a note of suspicion in her voice.

“Anyway, your wife hasn’t come back yet, has she?”

“No, not yet.”

“You know, Mr. Wind-Up Bird, you’re a grown man. Why don’t you use your head a little bit? If your wife had changed her mind and come home last night, she would have seen you with your arms locked around this woman. Then what?”

“True, that was a possibility.”

“And if she had been the one making this call, not me, and you started talking about telephone sex, what would she have thought about that?”

“You’re right,” I said.

“I’m telling you, you’ve got a problem,” she said, with a sigh.

“It’s true, I do have a problem.”

“Stop agreeing with everything I say! It’s not as if you’re going to solve everything by admitting your mistakes. Whether you admit them or not, mistakes are mistakes.”

“It’s true,” I said. It was true.

“I can’t stand it anymore!” said May Kasahara. “Anyway, tell me, what did you want last night? You came to my house looking for something, right?”

“Oh, that. Never mind.”

“Never mind?”

“Yeah. Finally, it’s ... never mind.”

“In other words, she gave you a hug, so you don’t need me anymore.”

“No, that’s not it. It just seemed to me-”

At which point May Kasahara hung up. Terrific. May Kasahara, Malta Kano, Creta Kano, the telephone woman, and Kumiko. May Kasahara was right: I had just a few too many women around me these days. And each one came packaged with her own special,inscrutable problem.

But I was too tired to think. I had to get some sleep. And there was something I would have to do when I woke up.I went back to bed and fell asleep.



멀고 낯선 거리의 풍경
*
영원한 반달
*
고정된 사다리


잠이 든 것과 거의 동시에 전화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는 전화 따윈 무시하고 그대로 자려고 했지만,전화는 그러한 내 마음을 꿰뚫어 보듯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한정 없이 집요하게 계속 울렸다.

나는 천천히 한쪽 눈을 뜨고 머리맡의 시계를 보았다.시각은 아침 6시가 지나 있었다. 창 밖은 이미 밝아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구미코에게서 온 전화일지도 모른다.나는 침대에서 나와 거실로 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하고 나는 말했다.그러나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누군가가 거기에 있다는 것은 기척으로 알 수 있었다.하지만 상대는 입을 열지 않았다.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수화기에 가만히 귀를 대자 상대방의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누구십니까" 그러나 상대는 여전히 잠자코 있었다.

"이따금씩 우리집에 전화를 거는 사람이라면,조금 있다가 전화를 걸어 주지 않겠소?" 하고 나는 말했다. "아침 먹기 전에는 섹스에 관한 이야기 같은 걸 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따금씩 전화를 거는 사람이 누구예요?" 하고 상대는 갑자기 소리를 냈다.그것은 가사하라 메이였다."저어,누구와 섹스 이야기를 한다는 거죠?"

"아무도 아냐" 하고 나는 말했다.

"어젯밤에 당신이 툇마루에서 안고 있던 여자? 그녀와 전화로 섹스 이야기를 해요?"

"아냐,그녀가 아냐."

"태엽 감는 새님,당신 주위에는 도대체 몇 명의 여자가 있죠? 부인을 제외하고요"

"설명하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 하고 나는 말했다."어쨋든 지금은 아침 6시고 어젯밤은 제대로 자지 못했어.그런데 너 어젯밤 우리 집에 왔엇구나"

"당신과 그 여자가 서로 껴안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그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냐.뭐라고 하면 좋을지,대수롭지 않은 의식과 같은 것이었어"

"나에게 변명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돼요,태엽 감는 새님" 하고 가사하라 메이는 차갑게 말했다.
"나는 아저씨의 부인이 아니니까요.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뭣하지만 아저씨에게 뭔가 문제가 있어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고 나는 말했다.

"아저씨가 지금 아무리 안 좋은 일을 당하고 있다 해도 - 분명 안 좋은 일을 당하고 있지만 - 그것은 아마 아저씨 자신이 불러들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아저씨에게는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고,그것이 자석처럼 여러 가지 문제를 끌어들이는 거예요.그러니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여자라면 아저씨에게서 재빨리 달아날 거예요"

"그 말이 맞는지도 몰라"

가사하라 메이는 잠시 전화 저쪽에서 잠자코 있었다.그리고 나서 헛기침을 한번 했다."아저씨,어제 저녁 골목에 왔었죠? 집 뒤에 계속 서 있었죠? 요령 없는 좀도둑 처럼 말예요....난 계속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왜 나오지 않았어?"

"여자에게는 나가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요,태엽 감는 새님" 하고 가사하라 메이는 말했다."그런식으로 심술궂은 기분이 들때가 있다구요, 기다리겠다면 계속 기다리게 해주겠다는 식으로요"

"음"

"하지만 역시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그 뒤에 바로 아저씨 집까지 일부러 갔어요,바보같이"

"그랬더니 내가 여자를 안고 있었다,그 말이로군"

"있잖아요,그 사람 약간 이상하지 않아요?" 하고 가사하라 메이는 말했다."요즘 세상에 그런 차림을 하고 그런 화장을 하는 사람은 좀 처럼 없어요. 타임 슬립이라든가 그런 게 아니라면 한번 의사에게 가서 머리의 상태를 알아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그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특별히 머리가 이상하지는 않아.사람에게는 각자 나름의 취향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취향을 갖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예요.하지만 보통 사람은 아무리 취향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철저하지는 않아요.그 사람,머리끝에서 발끝까지,뭐랄까 아주 옛날 잡지의 사진 요판인 그라비어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았어요"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잠자코 있었다.

"저어,태엽 감는 새님은 그 여자와 잤나요?"

"자지 않았어" 하고 나는 조금 망설이면서 대답했다.

"정말로?"

"정말이야.그런 육체적인 관계는 없었어"

"그런데 왜 껴안은 거죠?"

"여자에게는 단지 안기고 싶을 때가 있다구"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런 건 약간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해요" 하고 가사하라 메이는 말했다.

"그 말은 맞아" 하고 나도 인정했다.

"그 사람 이름이 뭐죠? "

"가노 구레타"

가사하라 메이는 전화 저쪽에서 다시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거 농담 아녜요?"

"농담이 아냐" 하고 나는 말햇다."그녀의 언니는 가노 마루타고."

"설마 본명은 아니겠죠?"

"본명은 아냐,직업상의 이름이지"

"그 사람들,만담 콤비 아닌가요? 아니면 혹시 지중해와 관계 있는 사람들인가요?"

"지중해와 조금 관계가 있어."

"언니 쪽은 차림새가 평범해요?"

"대체로 평범한 것 같아.동생보다는 헐씬 평범한 차림을 하고 있어. 단지 항상 똑같은 비닐 모자를 쓰고 있는 것만 빼고."

"그쪽도 그다지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네요.왜 아저씨는 일부러 그렇게 튀는 사람들과 사귀는 거죠?"

"거기에는 아주 복잡한 사정이 있어" 하고 나는 말했다."언젠가 여러 가지 일이 좀더 정리되면 너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지도 몰라.그러나 지금은 안돼. 내 머리도 너무 혼란스럽고 상황은 더욱 더 혼란스러워."

"그렇군요" 하고 가사하라 메이는 의심스러운 듯이 말했다.

"어쨋든 부인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나요?"

"응,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하고 나는 말했다.

"저어, 태엽 감는 새님,아저씨는 어른이니까,조금은 머리를 써서 생각하는 게 어때요,만약 아저씨 부인이 생각을 고쳐 먹고 어젯밤에 집으로 돌아왔는데,그때 아저씨가 그 여자와 꼭 껴안고 있는것을 보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그럴 가능성도 있었겠구나"

"만약 지금 전화를 건 사람이 내가 아니라 부인이었고,아저씨가 전화 섹스 이야기 따위를 한다면 부인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할까요?"

"분명히 네 말이 다 옳아"

"역시 아저씨에게는 상당히 문제가 있어요" 하고 가사하라 메이는 말하곤 한숨을 쉬었다.

"나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하고 나는 인정했다.

"그렇게 뭣이든 간단하게 인정하지 마세요.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아요.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지 잘못은 끝까지 잘못이에요."

"그 말이 맞아" 하고 나는 말했다.정말 맞는 말이다.

"아이, 기가 막혀" 하고 가사하라 메이는 단념한 듯이 말했다.

"그런데 어젯밤에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었어요? 아저씨는 뭔가를 구하러 우리 집까지 온 거죠?"

"그건 이제 됐어" 하고 나는 말했다.

"이젠 됐다고요?"

"그래, 그건 이제 끝난 거야."

"그 여자를 안았기 때문에 이제 나에게는 볼일이 없어진 거란 말인가요?"

"아냐, 그렇지 않아. 나는 그저 그때 생각햇는데......"

가사하라 메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어휴, 하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가사하라 메이,가노 마루타,가노 구레타,전화 속의 여자,그리고 구미코. 확실히 가사하라 메이가 말한 것처럼 최근 내 주위에는 여자가 너무 많아진 듯했다.그리고 모두가 각자 나름대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더 이상 생각하기에는 잠이 너무 쏟아졌다.일단 지금은 자야 한다.그리고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이 있다.나는 침대로 돌아가서 잠들었다.

*


왠지 16살의 여자아이와는 이야기가 통할 것 같다. 뭔가 조금 아는듯한 26살의 숙녀보다,세상물정을 잘아는 36살의 여성보다.

아마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한채로 삶의 가장 깊은곳에 근접한 나이일지도.

새벽녁에 일어나, 소설책 몇페이지를 아무 생각없이 타이핑 하는 사이,정말이지 느긋한 편안함을 느꼈다.기회가 되면 단순작업을 한두달 해보고 싶다.

아무생각없이 자신을 텅비게 만들면 어느사이에 자기 자신의 중심에 다가가있는 법이다.



16살의 가사하라 메이와,30살의 나와의 대화.
38살의 아내와, 37살의 나와의 대화.
4살의 아들과, 37살의 나와의 대화.

뭔가 잃고 싶지 않았던때의 대화,현실적인 괴리감의 대화,고해성사 같은 책임감 있는 대화.



이제 갖추고 싶은 소양 한가지가 늘었다,"품격"을 갖출 것.



왜 이 페이지를 서로 비교해보고 싶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우연인지,뭔지 여하튼 몇번을 봐도 새로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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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amy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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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일상 2008. 10. 16. 09:48
'무슨일이 있긴 있구나'

물티슈를 한장 쏙 빼내서 책에 낀 먼지를 닦고 있는 나를 가만히 보더니 아내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여전히 두번째 권을 쓰윽~ 쓱 문지르며 어깨너머로

'응?' 하고 되묻는 내게 아내가 또 말한다.

'말해봐, 무슨일인지'

생글거리는 눈빛인데, 나 역시 약간 미소띤채로 의아하게 되물었다.

'왜 그렇게 물어?'

'하루끼 책을 꺼내서 닦고 있자나'

무슨의미인지 제대로 파악이 안되서 뻣뻣한 자세로 아내랑, 내 손에 들린 '태엽감는 새' 네권을 번갈아봣다.

'뭔가 고민이 있거나,일이 있을땐,자긴 꼭 자기가 아주 좋아하는 책을 꺼내서 펴보는 버릇이 있어, 특히나 하루끼 책은'

'어, 내가 그래?'

'응'

'...'



몰랐었다.내가 그런 버릇이 있다는걸.

곰곰히 돌이켜보면 그런것같다.가만히 어떤 일로 부터 날 비켜세우고 싶을때나,좀더 뚜렷이 보고 싶을때, 마음을 가라앉히는 나만의 방식중의 하나인것이다.

무슨일인가에 대해선 모호한 말로 대충 말했지만, 왠지 지금은 덮어두는게 좋을것 같다.

아내 역시 더 묻지 않고 넘어간다, 아마 경험상 그러는게 좋다는걸 알고있다는 몸짓이다.

사실,나 역시 그 일을 제대로 파악할수가 없다. 왜 내가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지도 불확실하다.

그리고 뜻없이 새벽에 일어나 아내를 품어봤다.익숙한 향,부드러운 감촉.



아내가 꽤나 오래전에 내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이런말을 했었다.무척 담담한 눈빛이어서 잊을수가 없다.

'난 니가 생각하는것 보다 너에 대해서 더 많이 알어'

무슨뜻인지 파악할려는 날 좀더 지켜보더니 평상시로 돌아갔다.그때 난 약간 허방다리 짚는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아내는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부분들을 잡아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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